31 12월

Arthur Tappan Pierson

https://en.wikipedia.org/wiki/Arthur_Tappan_Pierson

아서 태펀 피어슨(Arthur Tappan Pierson, 한국어: 피어선(皮漁鮮), 1837년3월 6일 ~ 1911년6월 3일)은 미국의 장로교 목회자이자 성경교사 양성가이며 선교운동 지도자이다.

그는 근대 복음주의 선교운동 이론가였으며 13,000개 이상의 설교문과 연설을 집필하였고 60권 이상의 책을 썼다. 특히 한국의 언더우드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이자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회사가 로버트 엘리엇 스피어(R.E.Speer) 교수, 이슬람 선교의 개척자 새뮤얼 즈웨머(Samuel Zwemer)[1], 기독교청년회(YMCA) 운동과 에큐메니컬운동의 지도자로 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존 모트(John R. Mott), 한국의 선교사였던 제임스 게일(J. S. Gale)박사[2] 등 수많은 선교사와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1887년 새문안교회가 시작된 해에 언더우드는 피어슨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예배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편지를 보내며 깊은 교제를 시작하였고, 그 후 피어슨이 편집장으로 있던 세계선교평론의 조선거주 편집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후에 언더우드피어선성경기념학원의 초대 이사장으로서 학교설립을 주도하였고 초대 원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피어슨은 친구인 무디와 함께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을 주도하며 1886년 미국 노스필드에서 학생자원운동(SVM) 단체를 창설하여 셔우드 에디(Sherwood Eddy), 존 모트(John R. Mott), 헨리 윈터스 루스(Henry Winters Luce, 타임지 잡지 창설자 Henry R. Luce[3]의 아버지[4])와 같은 수많은 대학 청년들에게 선교의 비전을 심어 주었고, 여기에 도전을 받아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과 중국에 갔다.[5]

1910년 12월 약한 몸을 가지고 일본을 거쳐서 조선을 방문하여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인도하기도 하였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1911년 1월 조선을 떠나 일본, 미국 LA를 거쳐 뉴욕으로 돌아간 후 1911년 6월 3일 74세로 소천하였다. 그는 조선에 성경학교를 세우라는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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